채용은 성장을 위한 투자일까요,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설일까요?
한눈에 보기
투자 직후의 채용은 속도를 올려주기도 하지만, 방향이 바뀌는 시기에는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채용 비용은 연봉이 전부가 아닙니다. 시간, 온보딩, 역할 재조정 같은 숨은 비용이 런웨이를 줄입니다.
채용 계획은 인원수가 아니라 '지금 풀어야 할 업무'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통장에 투자금이 찍힌 다음 날 벌어지는 일
투자 계약을 마친 창업자의 머릿속에는 대개 비슷한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동안 혼자 붙잡고 있던 개발, 마케팅, 영업을 각각 맡아줄 사람을 뽑고, 드디어 '팀'다운 팀을 갖추는 그림입니다. 채용 공고를 먼저 올리는 것도 그래서 자연스러운 순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순서가 늘 맞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늘면 할 수 있는 일도 늘어날 것 같지만,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채용 자체가 속도를 떨어뜨리는 변수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채용은 '충원'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정규직 한 명을 들이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단계가 필요합니다. 어떤 역할이 필요한지 정의하고, 후보자를 찾고, 여러 차례 인터뷰를 거치고, 처우를 조율하고, 입사일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리는 이 기간 동안 시장과 고객은 계속 움직입니다.
시드 단계라면 더 그렇습니다. 이 시기에는 무엇을 먼저 만들지, 누구에게 팔지, 창업자가 어디에 시간을 써야 할지가 몇 주 단위로 바뀝니다. 이런 환경에서 정규직을 뽑는다는 것은 "앞으로 몇 달간 우리는 이 일에 집중하겠다"는 장기 약속을 미리 해두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그 약속이 빗나갈 때입니다.
한 초기 스타트업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려고 콘텐츠 마케터를 채용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고객 미팅을 거듭할수록 매출을 가로막는 진짜 병목은 인지도가 아니라 영업 프로세스의 부재였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개발 쪽도 비슷합니다. 신규 기능을 만들 개발자를 뽑았는데, 막상 가장 급한 일은 자주 멈추는 기존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것이었을 수 있습니다.
채용할 때는 분명 합리적이었던 판단이 몇 달 만에 회사의 우선순위와 어긋나는 것, 초기 채용에서 가장 흔하게 벌어지는 일입니다.
질문을 바꾸면 답이 달라집니다
자원이 한정된 초기 스타트업에게 "누구를 뽑을까?"는 생각보다 늦게 던져야 하는 질문입니다. 그보다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지금 우리 성장을 가장 크게 막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질문의 출발점을 '사람'에서 '업무'로 옮기면, 같은 과제라도 해결 방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당면 과제사람을 먼저 찾을 때업무를 먼저 정의할 때B2B 세일즈 체계 구축영업 총괄 책임자 채용영업 전략 수립과 세일즈 파이프라인 설계초기 제품 UX/UI 개선UX 전담 디자이너 영입핵심 화면 사용성 개선과 사용자 테스트IR용 재무 모델 수립CFO 영입재무 모델링과 투자 피칭 자료 검토AI 도입 로드맵 수립CTO 영입AI 전환 실행 계획과 우선 과제 도출
왼쪽 열은 "이 자리를 채울 사람"을 찾고, 오른쪽 열은 "이 문제를 풀 역량"을 찾습니다. 오른쪽 방식이 유리한 이유는 단순히 비용이 덜 들어서가 아닙니다. 채용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필요한 일을 바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봉 말고도 런웨이를 줄이는 것들
채용 예산을 짤 때 우리는 보통 연봉과 4대보험 정도를 계산합니다. 하지만 초기 스타트업의 런웨이를 실제로 깎아먹는 비용은 표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채용 과정에 쏟는 창업자와 팀의 시간
새 팀원이 제 속도를 내기까지 필요한 온보딩 시간
사업 방향이 바뀌었을 때 역할을 다시 조정하는 비용
아직 효과가 확인되지 않은 업무에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인건비
채용이 맞지 않았을 때 이를 정리하고 되돌리는 데 드는 시간
팀이 작을수록 한 사람의 영향력은 커집니다. 다섯 명 남짓한 조직에서 한 명의 역할이 모호하면 나머지 네 명의 업무 경계까지 흔들립니다. 그래서 초기 채용은 "회사가 크면 알아서 정리될 문제"로 미뤄둘 것이 아니라, 이 고정비를 지금 감수할 만한지 따져보는 의사결정이어야 합니다.
정규직을 뽑아야 하는 순간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고 채용을 미루는 것이 정답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매주 반복되는 핵심 업무가 있고, 그 업무가 회사의 장기 경쟁력과 맞닿아 있으며, 관련 역량이 조직 안에 계속 쌓여야 한다면 정규직 채용은 훌륭한 선택입니다.
핵심은 순서입니다. 어떤 업무는 먼저 외부 전문가와 함께 풀어보면서, 그 일이 정말 상시로 필요한지 확인한 뒤에 채용해도 늦지 않습니다. 시장 진입 전략을 설계하는 CMO급 전문성과, 매일 캠페인을 운영하는 실무 담당자는 전혀 다른 역할입니다. 전자는 몇 달의 프로젝트로 충분할 수 있고, 후자는 상주 인력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결국 초기 스타트업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해결된 업무'일 수 있습니다.
채용 공고를 쓰기 전 체크리스트
투자 이후 첫 채용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공고를 쓰기 전에 아래 다섯 가지를 먼저 적어보세요.
지금 우리의 가장 중요한 성장 과제는 무엇인가?
그 과제를 풀려면 어떤 역량이 필요한가?
그 역량은 6개월 뒤에도 계속 필요한가?
정규직이 꼭 필요한가, 프로젝트 단위로도 해결할 수 있는가?
이 과제가 해결되고 나면 다음 채용 계획은 어떻게 바뀌는가?
이 질문들에 답을 채우고 나면, 채용 계획은 "몇 명을 뽑을지"가 아니라 "어떤 일에 자본을 먼저 쓸지"를 정하는 문서로 바뀝니다. 런웨이를 지키는 방법은 채용을 무조건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일을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정규직 임원을 들이기 전에도 필요한 수준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그 대안으로 주목받는 Fractional Talent를 다뤄보겠습니다.
지금 풀어야 할 과제, 전문가와 먼저 시작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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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임태은 플렉스웍 대표가 스타트업레시피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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